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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어야 변한다 11/2 234일차.

 

와.

 

지이이인짜.

 

 

너무 많은 것이 또 변했고

내 삶은 변화의 연속이고

바람 잘 날이 참 없다.

 

너무 많은 일들이 내게 밀물처럼 밀어닥쳤고.

그 사이에 또 다산다난한 개인사가 또 휩쓸고 지나갔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 무슨 스무살마냥 넘치고 또 넘쳐서

인생이라는 게 왜이렇게 미치도록

나에게 자꾸 배움을 주려할까.. 싶기도 하다.

 

그만 배우고 싶다.

약간은 이제 나의 외부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지쳐버려서

그저 침대에서 유튜브나 보면서 미치도록 잠만자고 싶다.

 

자꾸 나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다.

 

그래, 세상이 내게 시련을 줄 수는 있다.

시련이 될만한 사건을 내게 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치만 그걸 내가 시련으로 분류를 할지,

아니면 피부에 스친 살랑이는 바람으로 치부할지는 나의 결정이란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적으로 너무나 지쳐있었던 가장 최근 2주 동안

정말 황홀한 꿈들을 꿨다.

마치 미래의 윤지가 현재의 윤지에게 좁은 시야로 빠져버린 불쌍한 인간을 어루어만져주듯이

자연들 사이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단단해진 내가 세상의 모든 자극들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꿈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푸른 들판이었고 시골 같은 풍경들 안에서 난 조금 걸어서 낡고 오래된 식당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여행지 안에서 약간의 안면식이 있는 사람들과 

그저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세상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너무나 별 것 아닌 일상 같은 꿈이었는데,

꿈 안에서의 나의 마음 가짐과 건강한 육체 그리고 여유로움은

내가 반드시 가져가고 싶은 나의 이상향이었다. 

나는 그 어떤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애정을 갈구하지 않았고, 남들의 시선에도 의연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항상 자유로운 삶을 꿈꿔왔다. 

내가 꾸었던 이 꿈 안에서 나는 나의 이상향 그 자체였다.

신기하게도 가장 현실을 살기 어려워했던 그 순간들 속에서 이런 꿈을 꿨다.

 

그리고 느꼈던 건, 곧 내가 그런 모습이

나의 모든 하루를 채울 거란 직감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담담함을 다하는 것.

 

그게 내 서른살, 마흔살, 그리고 그 이후의 앞으로의 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꿈은 이런 꿈을 꿨다.

 

현실의 윤지가, 미래의 이런 윤지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내 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

나의 신념.

나의 신념은 뭘까?

위로를 해주고 싶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각각 한 명의 사람들이 가진 가치를 너무너무 알려주고 싶다.

당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실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끊임없이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넌 정말 소중해. 넌 정말 예뻐. 넌 정말 있는 그대로 완벽해.

너여서 행복해. 이렇게

 

실제로 나는 날 너무 사랑한다.

난 '존중'을 해주고 싶다.

사람들에게 존중감을 주고 싶다.

 

내 지향점은 존중인 것 같다.

존중 받는다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걸

올해에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존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정말 많다는 거,

그리고 그 존중을 내가 날 위해 해야 한다는 거.

속수무책으로 당하면 안된다는 거.

 

그걸 올해 알게된 것 같다.

나에 대한 정의를 남이 내리면 안된다는 것.

 

'존중'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날 존중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나에겐 예쁜 찻잔이다.

그리고 청소.

맛있는 티.

 

상호작용에 있어서 존중을 받는 건 나는 타로라고 생각한다.

난 타로를 통해 정말 많은 존중감을 느낀다.

난 타로를 통해 나를 알게된 것 같다.

 

정신적 치유의 방법으로서 타로를 알게된 것 같다.

타로를 정말 정신 상담의 한 종류로 사용하는 쪽으로 가볼까?

 

타로를 단순히 미래를 보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닌

정신을 위로하는 도구로서 쓰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도구적 목적?

 

 

타로 앱을 정말 빨리 만들어야겠다.

타로 앱의 개발 목적은 '존중'인 것 같다.

정말 정말 이거인 것 같다.

 

원티드 강의 끝나면 바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