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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노먼드] 하트, 새, 그리고 구름.

 

  자본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가치는 때때로 경시되기 마련이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신성한 것만큼 경제 논리의 하위 개념으로 종속되기 쉬운 것도 없다. 눈에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는 더욱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 쉽게 가치를 잃는다. 미디어의 논리를 곧 양육강식의 논리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맹목적인 사랑의 노래는 그 자체로 미련함이고 연약함인 것이다. 

  우스운 것은 경시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 개개인의 삶과 온 인생의 생각의 매커니즘을 지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 아이는 사회와 경제 관점에서 엄청난 손실을 만든다.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심리적 공백을 갖게 되고, 그 공백은 폭풍의 눈이 되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주변 환경을 뒤틀어버리기 때문이다.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개인의 서사는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집단에서 비용을 발생시키지 이익을 만들어내진 못한다. 

  사랑을 얘기하는 드라마와 예능에 강한 반감을 갖고,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이성을 중시하는 사람조차도 내면에는 셀로판지가 외부 자극에 닿을 때 나는 연약한 소리만큼의 섬세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얘기는 아니고 오랫동안 보아온 나의 지인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오랫동안 한 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쉽게 잊지 못했다. 지구가 하얀색의 허물을 입고, 바래진 하얀색 허물을 다시 벗고 속살을 드러내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리워하고 생각했다. 미숙한 사랑은 밝고 환하지 못하다. 언제나 과거와 회상과 기억으로 머물러 있으며 책임은 무섭고 매몰된 감정만이 짙다. 현재는 불안하고 경솔하며 무디다. 본능과 자본주의가 이기고 섬세한 아기같은 감정을 다루는 조심성은 금방 지워진다. 그래서 현재의 사랑은 항상 과거에서 수배되는 것이다. 

  사랑이었든 집착이었든 미숙했던 성숙했던, 그저 사랑을 앞으로는 경시하지 말자고 하루하루 내 스스로 되뇌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