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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야 변한다

바뀌어야 변한다 4/22 42일차.

 

글을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

티스토리에 마지막 포스팅을 올린 후, 지금의 포스팅을 올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나는 여러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들에 변화가 생겼다.

 

티스토리에 첫 글을 올릴 시점에 나는 회사를 퇴사했었고, '생존'을 목표로 글을 남겼다.

 

한 달 하고 2주가 되가는 나는 현재

 

퇴사 초기부터 함께해온 회사와 추가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한 업체와 업무가 시작되었고, 지인을 통한 의뢰도 추가로 들어왔다.

 

홀로서기가 가능해지고 있는 과도기에 진입했다.

 

그런데 이상한 허탈감이 몰려왔다. 정확히는 기존 진행한 업체와 미팅을 잘 마친 뒤에 그런 감정이 몰려왔다.

여러 좋은 일들은 계속 이어져왔다.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기록'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포스팅을 쓰기 전에 기록을 하려고 한 노력들은 여러 번 있었다.

 

근데 기록하는 게 겸연쩍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냥 단순히 체력이 소진되고, 허망한 기분 때문이라는 추측을 했다.

 

그런데, 허망한 기분이 가셨는데도 글을 쓰기가 어색했다. 

 

'기록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것보다 '실행'하는 게 중요해.'

'잘하고 있는데, 뭘 더 기록해야 하지?'

'뭔가 낯간지러워.'

 

그냥 뭔지 모를 감정들이 가득했다. 

귀찮았던 건 아니다. 그냥 내가 나를 마주하는 게 어색했다. 

불필요하다고 느껴졌고,

의미 없다고 느꼈으며,

괜한 짓 같았고,

스스로 나르시즘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냥 기록일 뿐인데!

 

 

그렇다.

인정한다 이제.

 

나는 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실체보다

'나'라는 존재를 더 귀하게 여기고 보살피지 못한다.

 

얼마나 암담한 내 자신인가?

4월, 샐디챌이라는 셀프 디자인 경험 챌린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내 삶을 하나의 UX 환경으로 가정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나를 사용자로서

삶을 디자인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록을 하게 되었고,

나에 대한 기록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나의 목표나 성과, 

생존, 성공, 돈, 목표, 숫자.

그 어떤 것보다도

 

지금 여기 숨을 쉬며, 나의 육신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존재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소유한 것들,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들,

내가 목표로 하는 것들 그 어느것보다도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

내가 지금 바라보는 하늘,

나의 몸이 보내는 건강 신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목표의 가치를 나의 가치보다 높게 책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정말 여행을 다녀올 타이밍인가보다.

 

 

또 다른 나를 갱신하다.

새로운 직업,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새로 이사온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기록'을 통해 깨달은 걸 말하는 것이다.

 

기록을 계속 하니까 느낀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점점 솔직해지고 있다는 걸.

 

내가 목표로 하는 것.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아무 목표가 없다.

 

그냥 때로는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나 자신보다 대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나는 리더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롭고 싶다.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주고 싶고,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을 만들고 싶다.

내가 만든 플랫폼의 성공을 이루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은 나의 꿈은

지금의 젊음

지금의 온전한 육체

지금의 온전한 쉼

지금의 안락함

지금의 용기

지금의 도전

지금의 치기

지금의 나의 작은 노력들

지금의 나의 작은 성취들을

 

그냥 하나하나 쌓는 것이다.

 

그렇다. 솔직해지면

나 지금 이대로도 많이 행복하다.

오늘 하루도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졌는지 모른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오늘의 공기,

억지로 몸을 구기는 것 없이 집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

깨끗한 집

깨끗한 청소 도구들

벌레 없는 집

꾸준한 운동을 통해 가벼운 신체

운동 후 먹을 수 있는 고기

몸을 푹신하게 감싸는 침대와 소파

손 안에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아이폰

좋은 음향 기기

좋은 곡들

따뜻한 라떼, 아메리카노

예전에 먹다가 남겨놓은 당근 케익

당근을 통해 1만원에 구매한 프린터기

그래서 뽑은 내 인생 설계를 위한 다이어리.

무탈한 가족들.

건강한 부모님.

 

여기서 뭐가 더 어떻게 더 많은 걸 소유해서 행복해지겠는가?

이미 정말 많이 행복하고 많은 걸 가졌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말했다.

나는 5년 이상을 이와 같이 오직 육신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 결과, 1년 중 약 6주일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 비용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년 중 6주일이라면, 딱 42일이.

365일 중에 42일이면, 약 88%는 놀고 먹을 수 있으며, 일생 중 12%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열흘 중 하루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열흘 중 하루만 일하고 싶다는 걸 의미하는가?

그게 아니다.

'일'의 본질,

'돈'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잉여 생산물'에 대한 저장 능력이 생기고, '화폐'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더 많이 모으기 위해 더 많이 일하기 시작했다. 

 

'집' 또한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원래 인간들은 동굴 속에서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집삼아 살았었다. 

살기 위한 식량은 그날그날 사냥되었다.

 

이들에게 행복이란

누울 수 있는 곳이 있는 것.

오늘 하루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다는 것.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다였을 것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얼마나 평화로운가?

얼마나 성실한가?

얼마나 '', 그 자체인가?

 

영원히 중요한 가치만을 보고 살기에도 빠듯한 인생이다.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아닌 것들은 최대한 빼고 싶다.

이태원에서 이곳으로 이사올 때,

나는 나의 집이 이렇게 가득한 쓰레기 더미인줄 몰랐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혹시 몰라서 비축하고 있었다. 

쓰레기들를 모으고 있었다.

 

결국 혹시 몰라서 비축하고 있던 많은 것들은

결국 버려졌으니 말이다.

 

혹시 몰라서 을 쌓는,

아니 쓰레기를 모으는 행동은 그만두자.

 

물론, 여느 때를 대비해 비상금을 반드시 모아둬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과는 매우 다른 신념이긴 하다.

 

그런데,

혹시 몰라 돈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은,

어차피 일을 하면 모인다.

많냐, 적냐 그 차이일 뿐이다.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은 필요없다.

돈을 쌓아둔 뒤에 허망히 방치된 나의 육체와 영혼을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아꼈던 삼촌, 아니 작은 아빠가 있다.

20년 전, 마트를 하는 나의 부모님 아래에서 마트일을 배우고자 함께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그 때 삼촌은, 나나 언니, 남동생처럼 정말 철이 없었다.

눈빛이 살아있었다. 장난끼가 가득했다. 꿈이 있었던 것 같다. 

 

본가에 내려가 만난 지금의 삼촌, 아니 작은 아빠의 눈빛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었다.

눈빛이 죽어있었다. 

슬하에 있는 두 명의 자식과 부인과 함께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큰 마트를 일으켜세우느라

이런 여유로운 고민 없이 그저 성실하고 우둑하게 일하느라

자신을 많이 버리게 되셨다는 걸 느꼈다. 

 

나는 가끔 느낀다.

겉에 있는 육체 껍데기 너머로 그 안에서 숨 쉬는 영혼을.

삼촌은 아직도 나를 많이 아낀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가 가진 눈빛이 나의 잔상에 남았다.

 

그냥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체화하고 체득해서

나의 영혼과 숨쉬며 살고 싶다.

 

어쩌면 지금 이 기록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기록의 마라톤인 것 같다.

 

그 정도로 이렇게 오래 기록을 이어온게,

정말 많지 않았다.

 

어쩌면 부끄럽기도 하면서도..

사실 아직도 좀 어색하다.

 

왜냐면.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의 무게와

내가 가진 신념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왔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을

무시해왔다.

 

나름대로 나를 존중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영혼 또한 어쩌면

삼촌과 같이 굉장히 텅비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런 미안함을,

깨달음으로 인한 감사로 바꿔볼까 한다.

 

그래도 될 정도로,

나라는 사람 충분히 소중하니까.

나라는 사람, 충분히 여기에 존재하니까.

 

 

진짜 주책맞은데,

눈물이 난다.

 

중학생 때, 난 참 꿈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었었고,

많은 꿈을 꿨었다.

 

그 때 나는 민사고를 가는 꿈을 꿨었다.

아무도 내 꿈이 이뤄질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며,

실제 현실도 그러했다.

 

내 꿈은 정말 '꿈'으로 끝났었다.

 

이상하다. 그 때 중학생의 반짝반짝했던 나와 다시 만난 기분이다.

정말 오랜만에, 그 아이를 만난 기분이다.

 

그 아이를 만난 건 내가 꿈을 이뤄서가 아니다.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일 쓸데 없어 보였는데, 제일 중요했던 것.

 

이렇게 나를 들여다 보는 일.

사치이기도 하고 낯간지럽기도 하고

꿈에 부푼 어린애 같기도 하고.

푼수 같기도 하고.

'어른'스럽지 않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를 배워가는 일 말이다.

살기도 바쁜데.

돈 벌기도 바쁜데.

 

밥 먹다가 문득 내 영혼이 내게 말하더라고.

'뭐가 그렇게 바쁜데? 진짜 바빠?'

'너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게 문제 아니야?'

 

밥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내 영혼이 내게 말하더라고.

 

'네 속에 텅비어있는 그거. 네가 느끼는 허무함. 슬픔. 

그거 널 못챙기고 있는 거야.'

 

 

이 문구, 인터넷에 요즘 참 많이 보이는 이미지인데.

진짜,

나 자신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한 본업이 아닐까.

 

쉬워보이는데

절대 쉽지 않다.

 

쫌 무시했거든. 

내가 나를 안다고.

 

근데 진짜 하나도 몰라.

'원래' 난 그렇지.

아니, 원래 그렇지 않아.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다 야!

 

 

 

돈 걱정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게 뭐야?

 

딱 떠오른 문구는, 하나.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것.

 

그러나 이건, 다소 본능적인 부분이라,

 

나만의 목표가 있을 거 아냐.

니만의 북극성을 더 유심히 찾아보기로 했다.

 

내 꿈의 시발점은 이 '광고'였다.

고등학교 때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것보다 더 확실한 꿈이 있었다.

광고인이 되고 싶었다.

 

https://youtu.be/_hXwFJ97AzM

 

그리고, 또.

 

지금 하는 것. 시간적 자유를 얻는 것.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좀 더 불안하고, 좀 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프리랜서로 지내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9-6에 갖히지 않고 시간을 비교적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가족, 남자친구,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내 영혼이 숨쉬는 시간.

 

일상 속에서 사람의 영혼과 감성을 건들이는 작업물을 만드는 것.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좋겠어.

다만, 억지로 쥐어짜낸 비즈니스가 아니라,

필요했는데 그 필요를 제공해주는 서비스.

 

사람들이 쓰는 실용적인 일상품을 만드는 것.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

대의를 품는것. 남을 위해 사는 것.

 

피가 섞이지 않아도 나를 믿고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세상에 이로운 것을 만드는 일.

마케팅을 통해 사람들의 인생을 촉촉하게 만드는 것.

 

여행 다니는것.

나에 대해 이렇게 알아가는 것.

사랑하는 것.

감성과 기억을 건드리는 이미지, 글, 영상을 향유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만드는 것.

 

 

나에 대해 파악했으니,

이제 삶에 적용할 때이다.